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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유현준 교수와 함께 보는 아파트, 공간, 도시의 미래
건축가로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아파트의 형태가 있다면, 발코니 없는 아파트와 벽식 구조의 아파트입니다. 너무 작아서 쓰지도 못하고, 집에 들어갈 때마다 스트레스였던 경험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주거 공간의 판단 기준은 평수나 가격이 아닌 공간의 디자인이 되어야 하며, 같은 면적이라도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고층 아파트의 장점과 시각적 공간
고층 아파트에 살면 하늘과 멀리 보이는 산, 한강 등이 내 시야에 들어오고, 그것이 내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땅을 직접 밟고 있지 않지만, 그 빈 공간을 심리적으로 소유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더 많은 자유와 권력을 누리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발코니와 공간 구성의 문제
대한민국 아파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발코니가 실질적으로 기능하지 않고, 대부분이 벽식 구조라는 점입니다. 그 결과 방들은 단절되고, 가족 간의 시선과 대화가 단절됩니다. 창문이 서로 마주보고 열릴 수 있다면, 공간의 장면이 바뀌고 심리적 넓이가 커집니다.
아파트 구조와 심리적 넓이
A에서 B로 이동한 후, B에서 C를 통해 A로 돌아올 수 있다면 공간은 훨씬 더 복잡하고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파트는 하나의 루트만을 가지는 ‘팬케이크 플랜’ 구조로 되어 있어,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최악의 아파트란?
개인적으로 최악의 아파트는 주차가 어려운 아파트입니다. 오래된 아파트는 구조상 주차가 너무 불편해서 퇴근 후 집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수 있습니다.
다양성의 부족과 표준화의 문제
대한민국은 표준화와 대량생산이 건축의 기본 전략이었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아파트가 동일한 구조와 평면을 갖고 있고, 다양성이 부족합니다. 이로 인해 사람마다 다른 니즈를 충족시키기 어렵습니다.
가격 책정 기준의 문제
우리나라 부동산은 면적만을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합니다. 그래서 천정고가 높든 낮든, 내부 구조가 다르든, 모두 동일하게 84제곱미터로만 취급됩니다. 이는 다양성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좁은 공간에서 넓게 사는 법
기억의 총합이 공간의 넓이를 결정합니다. 즉, 공간 안에서의 다양한 경험이 많아질수록 공간은 더 넓게 느껴집니다. 이를 위해 조명을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천장의 밝은 백색 조명 대신 코너나 침대 밑, 바닥 등에 은은한 노란색 조명을 배치하면 공간이 아늑하고 다채롭게 바뀝니다.
공간을 디자인 기준으로 평가하는 방법
건축가마다 개성이 다른 설계를 한다면, 같은 면적의 아파트라도 전혀 다른 삶의 질을 제공합니다. 이런 차이가 가격에 반영되면, 평수가 아닌 디자인이 가치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공유 주거의 한계와 가능성
공유 공간은 경제적으로 효율적일 수 있지만, 함께 쓰는 사람의 성향과 질에 따라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공유 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최소한의 개인 공간이 점점 더 줄어드는 방향으로 악용될 수 있습니다.
건축 구조의 미래 – 라멘 구조
벽식 구조가 아닌 기둥 중심의 라멘 구조로 설계하면, 향후 리모델링이 용이하고 다양한 구조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100년 넘게 사용 가능한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기도 하며, 실제로 뉴욕의 로프트나 성수동의 공장 건물들이 그 예입니다.
상가의 주거 전환 가능성
현재 비어 있는 상가들은 주거 공간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큽니다.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도 도심 내 거주 공간을 확장할 수 있으며, 담장 설치나 마당 형태의 조경 등을 통해 더 쾌적한 주거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로봇이 사는 집
미래에 로봇이 생활공간에 들어올 때, 그들의 존재감이 심리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휴머노이드가 아닌 기능 중심의 형태로 설계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로봇이 소비하는 에너지가 매우 크기 때문에 에너지 문제 역시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의 양극화
소득이 높을수록 오프라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소득이 낮을수록 온라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비율이 높아집니다. 이러한 양극화는 개인의 공간 사용 방식, 소비 방식, 사회적 행동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맺으며
우리의 공간 사용은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합니다. 이제는 건축이 단순히 집을 짓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삶의 방식과 깊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디자인과 다양성이 중요해지는 시대, 평면에서 입체로, 면적에서 경험으로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식인 초대석 유현준 교수와 함께한 오늘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의 공간 감각도 새롭게 확장되었기를 바랍니다.